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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Sowon)

메조 소프라노와 앙상블을 위한 곡

안나 아크마토바 (Anna Achmatowa)와 로제 아우스랜더 (Rose Ausländer)의 시를 중심으로(1995/96년)

박-파안 영희의 여성보컬과 소형 앙상블을 위한 신작은 오랜 준비기간을 통해 쓰여진 것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이 한국인 여성작곡가는 시기와 언어가 다양한 여러 서정적인 시를 중심으로 활동을 해 왔다. 그 모두가 여성작가들의 것은 아니지만 여성작가가 전면에 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의 주제는 주로 ‘자기(Ich)’와 그 '사랑의 대상‘이며 간혹 타인과의 관계가 그 테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의 제목이 될 수도 있을 법한 도로테 줼레(Dorothee Sölle)의 시 ’구체적으로 원하는 법 배우기‘ 또는 한국의 여류시인 황진이의 시 등은 작곡가 박-파안 영희가 아직 작곡의 대상으로 삼지 않은 반면 아트만 (H.C.Artmann의 시 ’내 마음(Mein Herz)‘은 메조 소프라노와 바리톤을 위해 작곡되었다.

안나 아크마토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었으며 최근에는 루이제 라베(Louize Labe)의 글이 소재가 되었다. 로제 아우스랜더의 시 4편 중 첫 3편이 ‘아직...’(윤이상 추모곡)에 사용되어 1996년 1월 하노버에서 초연되었다.

소원의 주제는 자기결정, 자아실현(정체성 탐구), 자기 서술하기 등 스스로에게도 수수께끼인 (사랑하는) 나(자기)의 사랑과 갈망(그리움), 고뇌와 꿈(환상), 유토피아, 충족(Erfüllung)과 죽음이며 이 모든 것들이 또한 적대적인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시 구절의 선택과 그 나열은 정확하고도 구체적인 연출법을 따르고 있으며 음악적으로도 분명한 구분을 갖는다: 아크마토바의 시 두 편이 시작과 끝을, 그리고 ‘모토(Motto)'와 후기(Nachwort)가 곡을 장식하며 앙상블 전체와 성부를 위해 쓰였다. 사랑을 주제로 한 3 악장(라베)과 5 악장(아크마토바, "Clique I") 역시 동일한 편성이다. 다만 자아확인과 자기서술 부분을 표현한 제 2장과 4장(아우스랜더, 아트만)만이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소원은 아크마토바의 사행시(“Gold rostet...")로 시작되는데 이 시는 이 곡을 지배하는 모토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물질로 잘 알려진 광물질(금)의 소멸(산화)을 통해 모든 현세적인 것의 무상함이 그려진다. 그러나 이런 전향의 한편에는 말(과 함께 음악도)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으며 따라서 (시대를) 증언하는 무언가가 남는 것이며 이런 시대를 증언하는 것의 하나가 예술품이다. 그러나 이 희망은 이내 빼앗기고 만다: 성부에게는 첫 2행만이 주어지고 앙상블의 악부로 만 ‘위대한 말’이 살아남게 됨을 여운처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진행원칙으로 인해 음악은 자기의 자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나’가 연출해낼 매우 은밀한 분위기를 빼앗기고 만다. 로제 아우스랜더의 4편의 시중 그 첫번째인 ‘변화하는 것(Wandelbar)"에서 여성성부는 동반하는 앙상블로부터 격리되어 비올라만이 유일하게 남아 - 서서히 자신을 되찾게됨을 시사한다. 시작부분(아크마토바)의 반복을 거쳐 네번째 시가 삽입되고 다시 작은 앙상블이 동반된다. ’나‘는 자기의 위상을 정립하고 대지가 전하는 인사에 응답하는 대신 ’또 보자(Auf Wiedersehen)‘라고 답함으로서 대지의 은밀한 암시에 희망으로 대항한다.

바로 이 자기확신의 상태에서 르네상스의 여류시인 루이제 라베의 시를 주제로 한 제 3장으로 넘어간다. 라베의 24개의 소네트로 형성된 일련의 작품군 중 여덟 편의 시를 여성보컬과 앙상블을 통해 악상으로 옮겼다. ‘소원’에 사용된 라베의 여덟 개의 소네트는 전체적 맥락으로 볼 때 다른 나머지 소네트와는 동떨어진 양상을 띤다. 이 소네트에는 다른 소네트에 전형적인 사랑의 고통에 대한 페트라르카식 쾌감이 없는 부분이다. 여기서는 사랑하는 이의 희망과 불안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 사랑의 감정을 선사한 (사랑의 신) Amor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고통을 즐기는 신과의 끓임 없는 대립상황이 표현된다.

4번째 장에는 앙상블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악보 상으로 토대역할을 하는 아트만의 시 ‘내 마음‘은 ’나‘자신의 자기서술로 이해된다. 자기 마음(감정)의 수수께끼 같은 본질을 언어로 표현하고자 하는 나의 시도는 풀 수 없는 의문을 더 많이 만들어낼 뿐이다. 값비싼 비단, 어린 새들, 물, 생각, 의문, 별자리 (성부 참조)등은 자기 ’마음‘에 근접하는 단어들이다. 그래서 성부에는 이런 몇 개의 단어들이 불리도록 되어있는데 작곡가는 이들 아트만의 단어들을 한국어로 바꾸어 그 생소함을 더 한다. 시편에 표현된 수수께끼들이 이런 음악적 방법을 통해 더욱 더 수수께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답은 없다 그러나 종결부분에 도달하여 시의 마지막 구절: “겨울의 별들이 흩어지듯 쏟아진다”의 기쁨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의 분위기를 음악적으로 전달한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아크마토바의 시가 전개된다. 사랑하는 이와의 대화를 다루는 이 부분은 행복하고 유토피아적인 지난날의 사랑 그러나 이미 가버린 사랑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지나간 사랑이라 하더라도 사랑하는 이에게는 다시는 닫을 수 없는 하나의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여성성부와 전체 앙상블을 동원한 이 부분의 편성은 첫 악장의 아크마토바 인용구와 라베의 사랑의 고통을 노래한 부분을 동시에 연상시킨다. 다만 이제는 사랑의 성취라는 새로운 표현으로 변형된 것이다.

아크마토바의 “맺음말을 대신하는” 사행시를 끝으로 작품은 하나의 완벽한 원을 그리고 끝으로 다시 한번 사랑의 힘을 찬양한다. 사랑의 힘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환상의 불과하지만 “얼음을 녹이는 봄의 힘”을 갖고 있다. 이렇게 소원은 불쾌한 사랑의 종말 위에 어떤 열광적인 힘을 부여하여, 추위를 녹이고 문들을 열게 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게 한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이 것이 아크마토바의 첫 사행시가 추구하는 바를 분명하게 하고 이 작품의 제목인 소원의 뜻을 강화해 준다.

초연: 1996년 4월 28일, 비텐(Witten)의 현대 실내악 음악제 (Wittener Tage für Neue Kammermusik).
비어깃트 고체스 (Birgit Gotz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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